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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오 가이무편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인연이란 것이 참 무서운 것인지. 실수로 떨어트린 귤에 누군가가 맞질 않나, 또 실수해서 바닥에 귤을 떨어트리지 않나. 하지만 그들에게서 묘한 유대감이 느껴졌다. 새하얀 옷이 잘 어울리던 여성과 내가 가지고 있는 것과 비슷한 것으로 변신하던 남성. 나는 파란색과 주황색을 지니고 얼굴처럼 보이는 사진이 박힌 시계-라 칭해야 할지-를 그 사람에게 건네주었다. 내가 가지고 있는 것보다 그가 가지고 있는 것이 더 좋을 것만 같아서. 그와 그 괴물과의 전투를 뒤로하고 나는 나의 자리로 돌아갔다. 모든 일의 시작은 여기서 시작되었다.

  귤을 떨어트린 그 날에는 더는 밖에 나가 있지 않았다. 운이 좋은 건지 나쁜 건지 알 수가 없었지만, 무엇보다 피곤했기 때문에. 집에 도착하자마자 물건들을 놓고 바로 씻은 뒤에 편안한 침대에 몸을 뉘었다. 진동과 더불어 알람 소리가 시끄럽게 울리는 휴대전화를 손에 쥐고 현황을 보았다. 내가 봤던 괴물이 나타났다느니, 팀 바론의 리더가 그 괴물이라느니. 그다지 놀라진 않았지만-어딘가 익숙한 느낌이 들어서- 내 눈으로 직접 봤음에도 나는 그 괴물이 존재하고 있었다는 것이 믿어지지 않았다. 그것도 팀 바론의 리더가 괴물이라고…. 현황이 계속 올라옴에도 나는 이 일에 대해 신경을 쓰지 않으려고 한 시간 뒤에 울리는 알람을 맞춘 뒤 다른 곳에 올려둔 뒤 그대로 잠을 청하였다. 한 시간만 자둘까. 그러는게 좋지 않을까. 알람을 못 듣고 계속 자 버린다면 어쩔 수 없겠지만. 자고 일어나면 모든 것이 꿈일 것만 같아서, 나는 수면에 몸을 기댄 채 눈을 감았다.

 

*

  꿈인걸까. 주변이 뿌옇게 물들어서, 이것이 꿈일 수밖에 없다고 생각했다. 저 멀리 보이는 여성이라든가, 노이즈가 심하게 꼈다든가. 내게 손을 내밀며 천천히 다가오고 있었는데 그의 손이 닿는 순간 나는 잠에서 깨어났다. 그 얼굴은 너무 많이 본 얼굴이었어.

  일어났을 땐 이미 해가 지고 주변은 어두컴컴했다. 보이는 빛이라곤 하나도 존재하지 않는 어둠만이 이곳에 존재했다. 한 시간만 자려고 했는데. 비척거리며 자리에서 일어나 벽을 더듬으며 방 불 스위치를 찾아 헤맸고 손을 뻗자 버튼을 누르니 방을 비추는 불이 켜졌다. 그 순간에 빛이 갑작스레 들어와 눈이 아파서 감아버렸지만. 빛에 적응한 눈을 서서히 뜨며 다른 곳에 올려두었던 휴대전화를 집어 들었는데 알람은 이미 꺼져있었고 뉴스에 대한 알람만 떠 있었다. 누나가 끄고 갔나보다. 아니면 내가 너무 깊게 잠들어있던 건지. 역시 꿈이 아니었구나. 그 괴물에 관한 이야기는 아직까지도 한창 얘기가 나오고 있을 정도였다. 새삼스레 생각했다. 5년 전에는 저 사람이 리더가 아니었던 거 같은데. 유우야와 아지트 안에서 춤을 추었던 것을 생각했다. 더는 이런 거에도 신경을 쓰면 안 되는데. 어른이잖아. 더이상 생각해선 안 돼. 옷장 안에 쑤셔 넣었던 팀 가이무 옷을 쳐다보았다. 저렇게 대놓고 놓았던 거니까 내가 볼 수밖에 없는 거잖아. 열려있던 옷장의 문을 그대로 닫아버렸다. 나는 다시 춤이 추고 싶은 걸까. 내가 그리 생각하고 있을 때 밤은 계속 짙어져 가고 있었다.

*

  그 괴물에 관한 얘기가 점점 가라앉을 때쯤이었다. 가게를 꾸며야 하니 꽃을 사 오라니. 그것도 이른 아침에! 눈을 꾹 감으며 손으로 입을 가리고 길게 하품을 하였다. 이른 시간에 열려있는 꽃집이 어디 있다고 그러는 건지. 거리를 걸어 다니며 주변을 살피자 사람들이 출입하고 있는 꽃가게를 보았다. 있구나. 그곳을 쳐다보다가 모르겠다 싶어서 빠르게 꽃을 사고 돌아가기 위해 열려있는 그 꽃가게로 향해 걸어가 문을 열고 들어갔다. 들어가는 순간에 확 퍼지는 꽃향기에 잠시 넋을 잃었고 나도 모르게 입을 떡 벌리며 내 주변에 있는 꽃들과 나무들을 쳐다보았다. 너무, 큰 곳 아니야?! 전에 왔을 땐 작은 가게 아니었나? 몇 년 만에 화려하게 변해버린 꽃가게를 그저 보고 있을 수밖에 없었다. 몇 년이 지났으니 가능한 건가. 하지만 너무 커졌다고! 꽃을 고르기 위해 꽃가게 안을 걸어 다니며 피어있는 여러 가지 꽃들을 보며 생각했다. 무얼 사가야 가게를 꾸밀 수 있을까. 그렇게 몇 분을 걸어 다녔을까. 저 멀리서 팀 바론의 옷을 입고 있는 사람이 서있었다. 하지만 처음 보는 얼굴. 5년 전 실종된 사람들이 다 발견됐다 그랬나. 그 사람 중 한 명이라면 말이 된다. 저 긴 코트는 팀 바론의 리더나…. 그 주변 사람들 아니었나? 뚫어지라 쳐다보고 있을 때 그는 고개를 돌려 나를 쳐다보았다. 내 앞까지 걸어오는 건 덤이었고.

"뭘 그리 뚫어져라 쳐다보지? 그건 예의가 아니다."
"아, 저기. 미안해! 그렇게 쳐다볼 생각은 없었어!"

  그의 표정은 말 그대로 화가 나 있는 표정이었다. 그렇게 오래 쳐다본 것이 아니었지만, 기분이 나빴나보다. 나도 평소에는 오래 쳐다보진 않는데 괜한 궁금증이 생겨서 그런지. 팀 바론의 옷을 입고 있는 남자는 그저 날 내려다볼 뿐이었다. 마치 할 말은 있지만, 굳이 할 생각은 없어 보이는 표정. 입술을 꾹 깨물며 그를 쳐다보자 더는 할 말이 없는지 고개를 돌리며 뒤로 돌았다. 팀 바론의 옷, 그러니까 긴 코트가 펄럭이고 있다는 것만 알았다. 너무 사나운 거 아니야?! 미간을 좁히며 안쪽 깊숙이 들어가는 그를 보며 생각했다. 다시 보고 싶지 않은 사람. 그리 정의를 내렸다. 그리고 고개를 돌리니 내 옆에 자리 잡고 있던 백일홍을 보며 생각했다. 이것도 가게 꾸미기엔 괜찮은 꽃인 거 같은데. 나는 일하는 아르바이트생을 부르며 이 꽃과 가게에 꾸미기 좋은 꽃을 추천해 달라고 부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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