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작품 「사무라이전대 신켄쟈」의 중요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외도중과의 최후의 전투 후, 탄바는 매일 같이 맞선 상대를 제안하기 시작했다. 그런 탄바의 재촉을 피할 방법을 고민하다가, 문득 가문의 고택이 머릿속에 떠올랐다. 시바 가(家) 당주가 기거하는 그곳에 가 있으면, 독촉을 피할 수 있을 것 같아 그에게 서신을 보냈다.
“흐음… 좋아.”
이튿날, 본가에서 답장이 왔고, 나는 재빨리 답신을 챙겼다. 그가 흔쾌히 방문을 허락했기에 즉시 가벼운 옷가지를 챙겨 집을 나왔다. 탄바에게는 말하지 않았지만, 내버려두었다간 나를 찾기 위해 몹쓸 짓을 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어, 소반에 편지를 하나 남겨놓았다.
[일주일 간 본가에 머물며 아버님의 묘소를 돌볼 생각이니 찾지 말게.]
탄바가 그것을 보고 잠자코 나를 기다릴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지만, 그러기를 바라며 정류장에서 버스를 기다렸다. 본가를 떠날 때만해도 찬바람이 부는 겨울이었는데, 어느새 봄이 찾아와있었다. 따스한 바람을 느끼며 버스에 올라, 본가에 다다르는 데까지 그렇게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어서 오십시오, 어머니.”
“…오랜만이네, 타케루 군.”
커다랗고 위엄 있는 본가의 대문을 두드리자, 맨 처음 나온 것은 쿠로코였다. 쿠로코는 고개를 숙이며 나를 안뜰로 들이더니 재빨리 사라졌고, 곧이어 그가 나를 마중 나왔다. 쿠로코에게 소식을 전달받고 당황이라도 하였는지 버선발로 뛰어나온 그의 모습에 웃음을 참으며 인사를 받았다. 그런 내 표정이 이상했는지, 자신의 용모를 둘러보다가 양말만 신고 있는 것을 알아차린 그가 멋쩍게 웃었다.
“이렇게 빨리 오실 거라곤, 홀로 오실 거라곤 생각도 못했습니다.”
“탄바가 원인이어서 말이네.”
“예?”
본가 건물에 신발을 벗고 올라서며 놀라 눈을 크게 뜬 그에게 그간의 사정을 말해주었다. 그러자 본가를 떠나던 날부터 내게 맞선 목록을 읊어주던 탄바를 기억하고 있는 지, “염려 마시고 쉬다 가십시오.”라며 내 부담을 덜어주려는 듯 말했다.
그의 마음 씀씀이에 고마움을 느끼며, 그가 손에 작고, 물방울 모양에 납작한 물건을 들고 있는 것을 보았다. 반들반들한 재질로, 간혹 빛을 반사하는 그것은 그가 나를 만나기 직전까지 무엇인가 하고 있었다는 것이 분명했다.
“그건 기타 칠 때 사용하는 건가?”
“아, 예. 문화생활을 즐겨보라는 제안을 받았다보니…”
그래서 두어 개의 방을 둘러보자, 짙은 갈색의 나무 기타를 발견하였다. 그는 내가 자신의 손에 들린 것을 가리키며 묻자, 그렇다는 대답과 함께 자신이 기타를 가지고 있는 이유를 설명했다.
“재미있나?”
“예. 꽤나 즐겁습니다.”
손에 생채기가 나는데도 계속하는 것을 보아하니, 퍽 즐기고 있는 모양이었다. 가장 중요한 의무를 다한 그가 푹 빠진 것이 기타라는 사실은 꽤 흥미로웠다. 또한, 나도 한 번 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연주하는 법을 알려주지 않겠나?”
“그건… 저도 아직 연습 중이라…”
“악기를 쥐는 법만이라도 좋네.”
내 부탁에 머뭇거리던 그는 또 한 번의 부탁에 어쩔 수 없다는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의 허락이 떨어지자 나는 곧바로 기타에게 다가가 그것을 들어올렸다. 생각보다 묵직한 그것에 힘을 주어 들어 올린 다음, 어깨에 걸쳤다. 눈에 익은 대로 적당히 들자, 그가 나에게 들고 있던 것을 건네주었다.
“이건 피크라고 합니다.”
“피크…”
그의 말을 따라하며 손에 쥔 플라스틱을 내려다보았다. 바로 전까지 그가 가지고 있던 물건인지라, 그의 체온이 옮았는지 퍽 뜨뜻했다. 그런 피크에 내 체온을 더하며 그의 설명을 들었다.
“왼손으로 현을 누르고, 피크를 쥔 오른손으로 현을 튕겨 연주하시는 방식입니다.”
“현을 누르는 방법은?”
내 물음에 그가 시선을 살짝 올려 위를 쳐다보았다. 연습 중이라는 말이 겸손만은 아니었는지, 허공에 있는 그의 손가락이 가상의 현을 누르는 것처럼 움직였다. 그것을 지켜보고 있는데, 그가 나에게 손을 뻗었다. 기타의 머리 쪽을 잡고 있는 내 손을 잡아 현을 눌러 음계를 잡는 법을 알려주었다.
“피크로 현을 튕겨보십시오.”
“응.”
엄지와 검지를 이용해 피크를 쥐고, 모서리를 현에 가져다 댄 다음, 줄을 튕겨보았다. 그러자 기타 특유의 소리와 함께 현을 누르고 있는 손에 떨림이 전해져 왔다. 약간 간지러운 진동을 느끼며 고개를 들어 그를 올려다보았다. 더 배워보고 싶었다.
“혹시 여분의 기타가 있나?”
내 말에 그가 또 눈을 동그랗게 떴다. 이번 것도 당황스러울 것이라 예상했던 바였으므로, 질문 직후 어깨를 으쓱거렸다. 없다면 어쩔 수 없다는 말을 하려고 했는데, 쿠사카베가 갑자기 나타났다. 복도를 재빠르게 걸어온 것으로 보이는 쿠사카베는 들고 있던 기타를 나에게 바치듯 보여주었다.
“이걸 쓰십시오, 아가씨.”
“하지만…”
“괜찮습니다. 신은 잠시 동안 손주들을 보러 본가에 다녀올 예정이니 말입니다.”
쿠사카베가 권한 기타는 주인이 뻔히 보였기에 선뜻 받아들 수 없었다. 그런 내 반응을 본 쿠사카베는 근거를 더하며, 적극적으로 내게 기타를 권했다. 나는 머뭇거리다 그를 힐끗 쳐다보았고, 그는 마치 괜찮다고 말하는 것처럼 고개를 살짝 끄덕였다.
그렇게 나는 기타를 배울 수 있는 기회를 얻었고, 기타에 푹 빠졌다. 음계를 배우는 것은 순식간이었지만, 여러 음계를 손에 익혀 매끄럽게 연주하는 것은 별개의 문제였다. 생각보다 마음대로 움직여주지 않는 손에 답답해지기도 했다.
“자네는 연주에 익숙해지는데 얼마나 걸렸나?”
“음… 한 열흘 쯤 걸린 것 같습니다.”
“열흘.”
내가 자신의 말을 되뇌듯 따라 읊자, 그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의 말이 사실이라면, 이곳에 머무르는 동안 그와 합주를 하는 것은 무리라는 생각이 들었다. 시선을 아래로 내린 채, 집중한, 차분한 표정으로 기타를 연주하는 그의 모습이 멋져보였기에, 함께 연주하고 싶었건만.
게다가 손가락이 아픈 줄도 모르고 연주에 집중하는 것조차 머지않아 어려워졌다. 현을 누르던 손가락에 물집이 잡혀 터져버렸기 때문이다. 투명한 액체가 흘러나오는 자리를 소독하기 위해 약을 가져다대자 상당히 큰 고통이 수반됐다. 못 참을 정도는 아니지만, 미간이 찌푸려지고 악문 잇새 사이로 신음소리가 흘러나왔다.
“괜찮으십니까.”
“괜찮네… 단지 이 상태로는 더 이상 기타를 못 치겠군.”
물집이 터진 손가락에 밴드를 감으며 씁쓸하게 중얼거렸다. 그러자 그는 나를 위로라도 하려는 듯 기타를 쥐고 연주를 시작했다. 여느 때와 같았으면 멜로디만 들려왔겠지만, 이번에는 가사가 들어가 있었다. 그로인해 다소 불안정해졌으나, 듣기 좋은 목소리에 많이 묻혔다.
“노래 제목을 알려줄 수 있겠나?”
“「주황색 장미」라는 노래입니다. 주황색 장미의 꽃말을 담아 가사를 썼다고 하더군요.”
그의 설명에 고개를 끄덕였다. 그 후로 나는 기타 연습에 열중하느라 잠시 미뤄두었던 아버님의 묘소를 다녀왔다. 물을 뿌려 그곳을 깨끗이 했고, 빨리 손이 나아 다시 기타를 치고 싶다고 생각하는 찰나, 탄바가 나를 데리러 본가에 찾아왔다.
더 이상은 참을 수 없다고 탄바가 외쳐댄 시점은, 내가 집을 나온 지 일주일을 하루 남겨둔 참이었다. 본가로 향할 때만해도 서신을 확인한 탄바가 당장에 찾아올 지도 모른다고 생각했었으니, 이 정도 참았으면 장족의 발전인가—라는 생각을 했다.
“자주 연락 주게나.”
“예.”
탄바와 함께 집으로 돌아가게 된 날, 나는 그와 자주 서신을 주고받자는 말을 남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