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 아름다운 순간
* 가면라이더 파이즈의 후반부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 본편 44~45화 즈음의 내용을 주제에 맞춰 각색했습니다.
“유카 씨는 저랑 해 보고 싶었던 거 없으세요?”
유카는 젓가락질을 멈추고 고개를 들었다. 눈앞에는 케타로가 눈을 반짝이며 자신을 바라보고 있었다. 자신과 함께 맛있는 걸 먹고 싶었다는 케타로의 소원대로 꽤 비싼 연어 도시락을 하나씩 사서 먹고 있던 중이었다.
“해 보고 싶은 거요?”
“네! 계속 제가 하고 싶은 것만 말한 것 같아서.”
입에 물고 있던 연어 조각을 씹어 삼키고 되묻자, 케타로는 부끄러운 듯이 웃으면서도 유카를 똑바로 바라보았다. 하고 싶은 것... 유카는 살짝 고개를 기울이고 생각에 잠겼다.
실제로, 서로가 서로의 마음을 확인하고 난 이후로 케타로와 유카는 그런 주제에 관해 열심히 메일을 주고받았다. (바로 옆방에 앉아서 메일로 대화하고 있었기 때문에, 타쿠미는 뭐하는 짓이냐며 얼굴을 찌푸렸다) 솔직히 말해서 그때 유카는 조금 놀랐다. 첫번째 이유는 그가 그녀 자신과 하고 싶어하는 일이 굉장히 많았기 때문이었다. 함께 식사하기, 같은 사소한 일들부터 그가 얼굴을 붉히며 말하지 못한 꽤나 중요한 일들까지 그는 정말 많은 것을 생각하고 있었다.
그리고 두 번째 이유는 막상 그녀가 그와 하고 싶은 일을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는 걸 깨달았기 때문이었다. 막연하게 사랑하고 사랑받는 삶을 동경해 왔을 뿐, 구체적으로 무엇을 하겠다, 라는 건 생각하지 않았던 것이다. 여태껏 그를 연애 상대로 보지 않아왔기 때문인지, 혹은 은연중에 이런 평범한 연애는 하지 못할 거라고 생각했기 때문인지는 그녀 자신도 알지 못했다.
그래서 머릿속 한켠에 묻어두고 있었던 것을, 케타로가 다시 물어온 것이다. 좀처럼 대답하지 못하는 유카의 모습을 어떻게 생각했는지, 케타로가 말했다.
“저, 말하기 부끄러우시면 천천히 얘기해줘도 돼요. 그럼 이따가 같이 산책이라도 할까요? 밖에 날씨가 좋던데.”
잠시 후, 식사를 마친 둘은 거리로 나섰다. 밖은 한낮의 햇빛으로 따뜻하게 채워져 있었다. 케타로는 벚꽃이 환하게 피어있는 공원으로 유카를 데려갔다. 벚꽃이 양옆으로 흐드러지게 피어있는 길가에는 몇몇의 남녀가 손을 잡고 걷고 있었다. 그 연인들 사이에서 유카와 나란히 걷던 케타로는 묘하게 들뜬 마음으로 입을 뗐다.
“예쁘죠? 봄이면 이곳에 꽃이 예쁘게 핀다고 손님이 알려줬어요.”
“정말요. 저 이렇게 벚꽃이 많이 핀 건 처음 봐요.”
“유카씨는 벚꽃 좋아해요?”
“으응, 네.”
사실 유카는 벚꽃을 그렇게 좋아하지 않았다. 봄이 되면 모두가 은연중에 들뜬다. 날이 따뜻해지고 꽃이 피면 모든 곳에서 사랑이 싹튼다. 유카는 자신이 그 반열에 들지 못한다는 사실이 못내 싫었다. 미치코가 새로 봄옷을 장만하고, 신학기를 맞아 새로운 친구들과 놀러 다닐 때 자신은 있는 듯 없는 듯 교실 구석에 박혀 있어야 했다. 개중에서도 사랑의 상징 격인 벚꽃은 너는 사랑받을 수 없다고 말하는 것 같았다.
“유카씨와 같이 걸으니까 더 좋은 것 같아요.”
그래서 지금 자신이 그 모든 사실들에서 벗어나 벚꽃 아래를 걷고 있다는 것이 유카는 아주 기뻤다.
미묘하게 기분이 좋아 보이는 유카의 모습에 케타로는 오늘 있었던 일을 조잘조잘 떠들었다. 오늘은 어떤 손님이 왔고, 아침은 뭘 먹었고, 오늘은 햇빛이 좋아서 세탁물이 잘 마를 것 같다. 간간이 고개를 끄덕이면서 이야기를 듣던 유카는 어느새 자기 이야기를 하나씩 풀어놓기 시작했다. 어제 무슨 일이 있었고, 무엇이 맛있었고, 무엇이 즐거웠는지. 그러다가 유카는 갑자기 지금이 너무 행복해졌다.
미치코의 모습을 미워하면서도 동경하고, 카이도를 짝사랑하면서도 유카는 자신이 평범한 연애를 할 수 있을 거란 생각을 한 적이 없었다. 케타로와 함께 하고 싶은 일이 금방 생각나지 않은 것은 아마 그 탓일 것이다. 그래도 어렵지 않다. 키쿠치 케타로는 좋은 사람이고, 벚꽃 아래에서 나누는 이 평범한 대화조차도 상상했던 것보다 훨씬 행복하다.
“케타로 씨.”
“네?”
“저, 항상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길을 걷는 게 꿈이라고 말했었잖아요.”
“아, 네.”
유카는 케타로의 손을 꼭 붙잡았다. 손 안에 느껴지는 체온이 따뜻했다. 갑작스러운 접촉에 깜짝 놀란 케타로는 손을 빼지도 못하고 안절부절못했다. 그런 그를 올려다보면서, 유카는 만개한 벚꽃만큼 환하게 웃었다.
“고마워요, 케타로 씨.”
“예?”
“제 꿈을 이룰 수 있게 해주셔서.”
잠시 눈을 마주치던 케타로는 이내 그녀의 손을 마주 잡았다. 유카는 꽃무리를 올려다보았다. 때마침 불어온 바람에 고운 분홍빛 꽃잎이 허공에 흩어졌다. 그와 함께 걷는 꽃길은 마치 이 세상의 것이 아닌 것 같았다.
그렇게 눈을 감고 쏟아지는 바람을 맞으며 유카는 생각했다.
이 꽃이 언젠가 진다고 해도, 지금은 그녀의 인생에서 가장 아름다운 순간이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