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지
* 울트라맨 루브의 본편 결말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 본편 후 아사히의 이야기입니다.
미츠루기 사키에게.
츠루쨩, 잘 지내고 계신가요?
저는 아주 잘 지내고 있어요. 아버지와 오빠들은 물론이고 돌아오신 어머니와도 아주 사이가 좋아요. 친구들과도 여전히 잘 지내고 있고, 요즈음에는 성적도 올랐어요. 저도 어머니처럼 멋진 과학자가 되고 싶다고 생각해서 열심히 공부하고 있답니다.
저번 주에는 다함께 공원에 갔어요. 오빠들이 아주 어렸을 적에 그랬던 것처럼 소풍을 갔죠. 잔디밭에 앉아 도시락을 먹고, 공놀이도 하고, 물총 싸움도 하고. 카츠 오빠와 이사 오빠는 울트라맨으로 싸우면서 얻은 경험이 있어서인지 늘 선방했답니다. 그래도 어머니와 아버지의 연계 공격을 이기기엔 역부족이었지만요.
돌아오는 길에는 아이스크림을 먹었어요. 카츠 오빠는 바닐라맛, 이사 오빠는 초콜릿 맛, 저는 딸기맛을 골랐는데, 서로 서로의 것을 욕심내다가 결국엔 세 가지 맛을 전부 맛보게 되었답니다. 하나같이 시원하고 달콤했어요. 그 가게의 아이스크림은 실패하는 법이 없지요. 예전에 먹었던 딸기 아이스크림도 그 가게에서 샀던 거랍니다. 츠루쨩이 좋아했으면 해서 고민하다가, 결국은 제가 가장 좋아하는 맛으로 골랐더랬죠. 기회가 된다면 다른 맛도 함께 먹어봤으면 해요. 분명 츠루쨩도 좋아할 거에요.
그 날 루고사이트와 싸우면서 부서졌던 마을은 아이젠 테크에서 책임지고 복구하기로 했어요. 전 사장이었던 아이젠 마코토 씨가 연락이 두절되는 바람에 남은 사람 중 최고 책임자였던 어머니가 임시 사장을 맡고 있답니다. 물론 거의 대외적인 것 뿐이고 실제 일처리는 거의 달링이 하고 있지만요. 이런 말 하기는 조금 그렇지만 줄곧 비서 노릇만 하다가 명령권자가 된 게 꽤 즐거운가 봐요.
오늘 하교를 하다가 잠깐 그곳에 들렀어요. 오늘도 인부 분들이 반갑게 인사해 주셨답니다. 아직 전부 복구되지는 않았지만, 작업은 놀라울 만큼 빨리 진행되고 있어요. 엉망으로 부서졌던 바닥의 콘크리트 조각들이 어딘가로 치워지고 파헤쳐진 땅이 평평하게 메워지고 있지요. 이 도시가 부서질 때는 그곳에 우리밖에 없었는데, 수많은 사람들과 중장비들이 바쁘게 움직이는 걸 보고 있으면 기분이 이상해져요.
츠루쨩, 저 사실 츠루쨩이 보고 싶을 때마다 그곳에 가요. 츠루쨩을 처음 만났던 카페, 같이 갔던 공원, 함께 먹었던 아이스크림을 볼 때마다 문득 당신이 생각나서요. 당신과 함께했던 시간이 생각나서 해피해지다가도, 나를 보며 웃던 얼굴을 떠올리면 금세 기분이 가라앉습니다.
그럼 그냥 하염없이 걸어요. 그러고 있으면 온갖 생각이 든답니다. 그때 설득했다면 싸우지 않을 수 있었을까? 그때 말렸으면 당신을 잃지 않을 수 있었을까? 그때 다른 맛 아이스크림을 선택했다면 츠루쨩에게 두 가지 맛을 전부 보여줄 수 있었을까? 내가 조금 더 강했다면 당신을 지킬 수 있었을까? 지금 고민해봤자 아무것도 바뀌지 않는 것들이지요.
그렇게 걷다 보면 어느새 예의 그 공사장에 도착해 있답니다. 거기서도 안쪽으로 더 들어가면 -원래 일반인은 들어가면 안 되지만, 저는 어머니와 오빠들 덕분에 특별취급이랍니다- 우리가 싸웠던 바로 그 지점이 나와요. 루고사이트가 나타났고, 오빠들이 서 있었고, 츠루쨩이 죽은 바로 그 장소요. 그럼 항상 그 곳에 멍하니 앉아 있다가 돌아오곤 하는데, 있죠. 오늘 제가 거기서 뭘 발견했는지 아시나요?
단단한 땅 위, 부서진 돌조각 사이에 하얀 데이지꽃이 피어있었어요.
카츠 오빠가 그러는데, 데이지의 꽃말은 희망이래요. 그렇게 파헤쳐진 땅에 어떻게 또 꽃이 피었는지, 참 신기하죠? 그렇게 생각하니까 꼭 츠루쨩을 양분으로 핀 꽃 같았어요. 우리가 싸운 그 장소에 희망이 피어있어요. 츠루쨩은 어떻게 생각해요? 당신이 생각하기에도 그런 것 같나요?
저, 츠루쨩이 정말 보고 싶어요. 아무렇지도 않다가 엄청 슬퍼지기도 하고, 이럴 줄 알았으면 같이 더 많은 걸 해 볼걸 후회되기도 하고, 아주 가끔은 마음대로 죽어버린 당신이 원망스럽기도 해요. 그래도 당신은 행복하다고 했으니까, 당신 덕분에 모두가 살 수 있었으니까, 이 곳도 언젠가는 다시 원래의 모습을 찾을 테니까, 괜찮을 거에요.
저 정말 잘 지내고 있어요. 어머니도, 아버지도, 오빠들도 제가 슬퍼할 때마다 엄청나게 신경써주고 있거든요. 카츠 오빠가 제일 티나고, 이사 오빠는 언제나처럼 틱틱대지만 일부러 밝은 분위기를 만들려고 해요. 츠루쨩이 없는 건 슬프지만, 제겐 츠루쨩이 지켜준 가족들도 친구들도 있으니까 잘 지낼 수 있을 거에요. 또 언제나 해피하게요.
츠루쨩도 언제나 해피하기를 바랄게요. 마지막에 그랬던 것처럼.
사랑해요.
미나토 아사히 올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