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가면라이더 덴오의 중요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으며, 시점은 본편 엔딩과 시작 전을 다루고 있으나 그 내용이 공식과 차이가 있습니다.
* 본 작품에 등장하는 유토는 ‘사쿠라이 씨’입니다.
고요한 병실의 문이 열렸다. ‘드르륵’하는 소리가 잠시 울리며 유토가 안으로 들어섰다. 그는 병실 가운데에 있는 침대 쪽으로 다가갔고, 그곳에 누워있는 아이리를 내려다보았다. 하고 싶은 말이 있는 듯 입술을 달싹였지만, 목소리는 들려오지 않았다.
한참을 말없이 아이리를 응시하던 유토는 고개를 한 번 가로젓더니, 품 안에서 꽃다발을 꺼냈다. 투명 비닐과 리본 등으로 예쁘게 꾸며진 꽃다발에는 푸른색 장미가 여러 송이 묶여 있었다. 유토가 흔치 않은 꽃다발을 침대 옆의 낮은 서랍에 올려두자, 그의 몸이 서서히 흐려지기 시작했다.
“아이리….”
변화하는, 스스로의 몸을 확인한 유토가 꽤 애절한 목소리로 아이리의 이름을 불렀다.
* * *
밀크 디퍼에 앉아있는 유토는 혼란스러운 표정을 짓고 있었다. 전날, 아이리와 함께 별을 보기 위해 방문한 희망의 언덕에서 본 제로 라이더를 통해 알게 된 미래 때문이었다. 인류가 멸망하고 사막처럼 황폐화된 세상을 구하기 위해 그가 할 수 있는 일은 미래의 도래를 막는 것이었다.
하지만 이길 가능성보다 질 가능성이 더 높은 싸움에서 유토가 미래를 바꾸기 위해 포기해야 하는 것은 대단히 소중했다. 사랑하는 사람과 미래의 아이와, 심지어 스스로의 존재까지―. 집으로 돌아와 밤을 꼬박 새워 고민을 했지만, 쉽사리 결정을 내리지 못하고 망설이다 괴로운 아침을 맞이했었다.
“장미는 델피니딘이라는 색소가 만들어지지 않아서 푸른색이 될 수 없대.”
입술을 잘근잘근 씹으며 턱을 괸 유토에게 아이리가 다가왔다. 늘 내어주던 커피가 아닌, 푸른 장미 한 송이를 건네는 그의 모습에 유토는 의아해하며 아이리를 올려다보았다. 얼굴에 의문을 띄운 유토를 바라보며 아이리가 부드럽게 미소 지었다. 웃고 있는 그의 품에는 푸른 장미가 몇 송이 더 있었고, 그것을 하나씩 유토가 차지한 테이블에 올려놓으며 말을 이었다.
“하지만 푸른 장미를 만들기 위해 여러 사람들이 포기하지 않고 노력한 덕분에 이렇게 아름다운 장미가 탄생할 수 있었다고 해. 그래서 푸른 장미의 꽃말은 ‘모두들 불가능하다고 여겼지만 노력 끝에 가능으로, 다시 말해 기적적으로 이끌어내다’라고 한다더라.”
“아이리….”
가지고 있던 장미꽃을 모두 테이블 위에 내려놓은 아이리를 유토가 불렀다. 슬프게 울려 퍼지는 그의 목소리에 아이리는 유토의 어깨에 손을 얹었다. 기운 없이 풀 죽어 있던 어깨를 토닥였고, 그 행동은 마치 유토가 선택해야하는 바람직한 길을 독려하는 것 같았다.
“나는 유토가 푸른 장미 같은 사람이 되었으면 좋겠어. 맞서 싸워 이기는 것이 불가능해 보이는 상황에도 포기하지 않고, 우리들의 미래를 지켜줘.”
마지막으로 장미 묶음 위에 제로노스 카드 덱을 내려놓으며 아이리가 말했다. 녹색 카드 여러 장이 들어있는 덱과 아이리를 번갈아 바라보며 유토는 애달픈 표정을 지었다. 자신의 제로노스가 되어 이매진들과 싸우게 되면 발생하고 마는 상황을 다수를 위해 감수하겠다는 아이리의 모습에 가슴이 먹먹해졌다.
“…꼭 돌아올게.”
“응. 미래에서 기다릴게.”
고개를 끄덕이는 아이리의 손을 유토는 쉽사리 놓지 못했다. 몇 번이고 망설이는 유토의 입술에 스스로의 입술을 가져다 붙이고 짧게 입 맞춘 아이리가 환하게 웃어 보였다. 애써 밝게 행동하는 자신을 유토가 꽉 끌어안자, 아이리는 품에 들어오는 그의 등을 토닥였다.
* * *
“유토…?”
안타까워하던 유토의 존재가 막 사라졌을 때, 아이리가 의식을 되찾았다. 그는 눈을 뜨자마자 유토의 말에 대답이라도 하듯 그의 이름을 불렀다. 그러나 아이리의 말은 그 말을 들어야 할 상대를 찾지 못하고 공기 중으로 흩어져버렸다.
전해지지 않는 부름에 아이리는 가슴이 미어지는 것을 느끼며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유토의 온기가 존재하던 병실에 남아있는 것은 푸른 장미 꽃다발뿐이었고, 그것을 발견한 아이리의 눈이 동그랗게 뜨여졌다가 휘어졌다.
“지켜냈구나… 우리들의 미래를.”
슬픈 듯 기쁜 얼굴로 과거를 회상하던 아이리는 ‘툭’하고 무거운 물건이 떨어지는 둔탁한 소리를 들었다. 소리가 난 방향으로 고개를 돌리자, 놀라서 가방을 떨어뜨리곤 어쩔 줄 모르겠다는 표정을 짓고 있는 료타로가 보였다. 몹시 감격한 그를 힐끗 쳐다보며 아이리는 푸른 장미 꽃다발을 가리켰다.
“료타로. 내가 자고 있는 사이에 유토가 다녀간 모양이야.”